씨엠립한인회에 아낌없는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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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안창호 선생은 지난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최초의 한인단체를 만들었다. ‘상항친목회(桑港親睦會)’라는 이름의 단체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거주 한인 20여 명 중에 친목 회원은 불과 9명뿐이었다. 그 뒤 1904년 한국인들의 하와이 이주가 시작되고, 그 중 일부 한인들이 미국 본토로 이주함에 따라 미서부 샌프란시스코의 교민 수는 제법 늘어났다. 이후 1905년 4월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공립협회’라고 개칭하였다. 초대 회장은 안창호 선생이 맡았다. 

당시 공립협회의 규율은 이러했다. 

▲ 아홉시에 잠자리에 들 것 ▲속옷차림으로 외출하지 말 것 ▲방을 깨끗이 정리할 것 ▲버는 돈은 저축하거나 본국으로 보낼 것 ▲차이나타운에 가서 돈을 쓰 말 것

규칙의 이면을 보면 당시 동포들의 생활상이 엿보인다.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어 실소하게 된다. 

이후 공립협회는 재미 한인 항일애국운동을 주도할 ‘대한인국민회’로 확대발전했다.

△ 캄보디아에 한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친미성향의 론놀 정권이 들어서부터다. 30년 만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1975년 4월 17일 공산혁명주의노선을 지향하는 크메르루즈군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기 직전까지 대사관 주재원을 뺀 최소 4~50명 우리 교민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부분 미국계 기업에 채용되어 파견 나온 한국계 기술자들이었다. 크메르공화국 패망 후에도 남아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김대국씨 역시 미국계 항공사 엔지니어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태권도무관과 전쟁고아들을 키우는 고아원 운영자, ‘코리안 하우스’라는 식당을 운영하던 한국인과 여자 미용사도 있었다.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태국으로 철수한 20여명의 교민들이 모여 방콕에서 마지막 해산식을 가진 뒤 각자 고국으로 되돌아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캄보디아에 정식으로 첫 한인회가 발족한 것은 1996년이었다. 손병덕, 김용덕, 서병도, 김문백, 노용준씨 등이 주축이 되어 초대 한인회를 발족시켰다. 당시 교민수는 대략 100여명 정도였다. 초대 한인회장은 사업가 손병순씨가 맡았으나, 지병차 태국으로 간 뒤 6개월 만에 그만 별세하고 말았다. 결국 부회장이었던 미국 교포사업가 김용덕씨가 손 초대회장의 잔여 임기를 승계한 뒤, 3대 회장 직까지 역임했다. 

이듬해인 1997년 10월 29일 우리나라와 캄보디아는 단교한 지 22년 만에 대사관급 외교관계를 다시 맺었는데, 당시 한인회가 우리나라 정부를 대신해 보이지 않은 많은 기여를 했다. 

△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 한인회가 발족한 것은 2005년 무렵이다. 이듬해 노무현 대통령의 캄보디아 국빈 방문 일정과 맞물려, 씨엠립에도 한인회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고, 당시 여행사를 운영하던 이필승씨가 초대한인회장 선거에 나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석연찮은 이유로 그는 수개월 뒤 중도사퇴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선관위가 재결성된 가운데, 한인식당을 운영하던 김덕희씨가 2대 한인회장을 맡았다. 이후 송권수, 박종구, 주기병씨 등이 한인사회를 이끌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윤윤대씨(당시 한인회장 직무대행)도 위기의 교민사회를 이끈 잊지 못할 인물로 기억된다. 

△ 현재 씨엠립 한인회장은 사업가 정복길씨 뒤를 박우석씨가 제8대 한인회장직을 맡고 있다. 가이드협회장을 역임한 그가 한인회를 맡기 전부터 이미 교민사회는 어려운 난관과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자국 가이드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이 나라 정부가 한인가이드쿼터제 등 각종 규제 조치를 내놓았고, 이로 인해 한국인 가이드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제살깎기식 과당경쟁과 마이너스투어가 찬물을 끼얹었고, 국내 대형여행사들은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가이드들을 옥죄는 바람에, 본연의 업무보다는 쇼핑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극한 상황으로 가이드들이 내몰렸다. 이로 인해 호텔과 식사 등 서비스 질이 갈수록 나빠졌고, 결국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점차 다른 관광지로 발길을 돌렸다. 여행업과 식당, 기념품점 등 관광업을 주업으로 삼은 수많은 교민들이 씨엠립을 떠나고 고국으로 되돌아가거나 베트남 다낭으로 가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는 바람에 씨엠립 여행시장은 한마디로 붕괴 일보 직전이다.  

그런 가운데, 씨엠립한인회가 지난해부터 벌써 1년 넘게 ‘함께 라면’이라는 이름으로 어려운 교민들과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 중이다. 벌써 7차 행사를 마치고 이달 27일~28일 양일간 8차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박우석 한인회장은 “지금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아빠가 한국에 돈 벌러 갔다며 어린 교민자녀가 꼭꼭 눌러쓴 감사의 편지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한인회는 교민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비영리 봉사단체다. 한인회원들이 낸 회비로 운영된다. 오로지 희생과 봉사정신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잘해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표현도 어쩌면 한인회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돕기는커녕 어설픈 훈수두기나 딴지걸기 좋아하는 일부 호사가들의 ‘뒷담화’쯤이야 늘 상 있는 일이다. ‘백척간두’에 놓은 한인사회를 살리기 위해 묵묵히 애쓰는 박회장과 씨엠립 한인회 임원들의 노력이 그저 가상할 따름이다. 

최근 이 한인회는 혼자 사는 교민들이나 연세가 많은 교민 원로들을 위해 비상연락망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정작 우리나라 외교공관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한인회가 도맡아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던 박 회장 특유의 저음 목소리가 또 다시 귓전을 맴돈다. 부디 좋은 날이 꼭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편집장 박정연]


한인회사무국 ☎ 012 414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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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엠립한인회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TTi0e872y50Ha-36LVHr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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