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자동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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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앙코르와트 앞에 주차된 프랑스산 자동차의 모습.

캄보디아에 외제자동차가 최초로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인 지난 1925년이다. 당시 수입된 첫차 브랜드는 기어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로 시작, 1919년 문을 연 프랑스의 신생기업 ‘시트로엥(Citroen)’가 생산한 400cc급 ‘타입 A’ 였다.

참고로 ‘시트로엥’이란 회사명이자 브랜드명은 창업자인 앙드레 시트로엥(André Citroën:1878~1935)의 이름에서 따왔다.

시트로엥의 고급승용차 DS를 타고 지방 철도역에 도착한 시하누크 국왕의 모습. 1960년대 추정.

시트로엥 자동차의 첫 출시에 때를 맞춰 프랑스 출신 사업가 에밀 바이니(Emile Bainie)가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내 첫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그는 1919년 사이공(현재 호치민시)에 첫 대리점 문을 연데 이어 6년 뒤인 1925년 하노이와 캄보디아까지 진출, 수도 프놈펜 ‘rue Gallien’(현재 강변 ‘바 거리’로 유명한 리버사이드 136st)에 캄보디아 최초의 자동차 쇼룸까지 열었다. 당시 주요 고객들은 프랑스 식민당국 고위 관료들과 돈 많은 크메르 왕실 가족들이었다.

이후 계약이 만료된 1933년, 스트로엥 본사 임원 중 한 명인 조지 데스뤼(Georges Desrues)가 직접 독점 판매사업권을 따냈고, 1937년 프놈펜 시내 ‘rue Philastre'(St.80)에 씨트로엥 차량 전문 정비소 문을 열었다. 2년 후인 1939년에는 신형 The 15CV 출시를 기념해 이 나라에서 1,000번째 자사 자동차가 팔린 것을 축하하는 특별 이벤트 행사까지 열기도 했다.

캄보디아에서 시트로엥 2CV 출시 당시 홍보를 위해 제작된 광고사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뿐만 아니라 당시 프랑스에서 시트로엥의 인기는 단연 최고였다.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엄마, 아빠, 그리고 시트로엥이다”라는 유머까지 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세계 최초로 ‘애프터 서비스’라는 개념을 도입한 브랜드이기도 했다. 1939년에는 짐마차를 대신할, 가성비 높은 2마력짜리 씨트로엥 2CV 300대를 한정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독일군에 함락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씨트로엥 자동차는 경쟁사인 르노 자동차와 달리, 사업을 거의 접다시피 할 정도로 어려운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독일정부에 비협조적이었던 탓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애국기업’ 인 셈.

시트로엥 자동차를 시승중인 꼬사막 왕비의 모습. 현 시하모니 국왕의 친할머니.

다행히 전쟁이 끝난 후인 1949년부터 본격 재 출시된 씨트로엥 2CV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극적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외의 인기와 폭발적 수요에 고무된 프랑스 사업가 조지 데스뤼는 캄보디아를 떠나지 않고, 1958년 베스트셀러카인 2CV만을 조립생산하기 위한 현지 공장을 건설했다. 캄보디아에 세워진 최초의 자동차 조립 생산 공장이었다. 이 공장은 SKMA(Société Khmère de Montage Automobile)이란 이름으로 남부해안도시 시하누크빌 항구와 프놈펜 자치항 인근 등 2곳에 지어졌다.

시트로엥 자동차 조립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

당시 이 공장 준공식에는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이 참석, 자국에서 처음 조립 생산된 자동차에 큰 관심을 보였다. 모친인 꼬사막 왕비까지 나서 직접 시승을 하기도 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2CV는 그 이듬해 중국에 50대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내수시장이 적은 탓에 판매실적은 그리 좋지 않았고, 결국 1962년 문을 닫고 말았다.

하지만, 자동차 조립생산을 통해 쌓아놓은 기술과 노하우만큼은 그대로 캄보디아의 손 끝에 남아 있었다. 이를 토대로 정부가 지원하는 자동차 트럭 생산 공장이 시하크누빌에 건립되었다.

노로돔대로에 있던 씨트로엥 자동차 쇼룸

The SONATRAC (Societe National Des Tracteurs)라고 명명된 이 트럭 생산공장에서는 트럭뿐만 아니라, 농업용 트랙터, 오토바이, 산업용 모터 등도 생산했다. 베트남전쟁이 발발, 미국과의 갈등 속에 물자 원조가 중단된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자체 기술력으로 지프 트럭까지 생산해냈다. 한국전 이후 1955년 미군으로부터 받은 중고 지프차를 개조하여 만든 지프형 차량인 ‘시발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대략 짐작된다. 다만, 아쉽게도 당시 자체 기술로 생산된 지프 트럭은 남아 있는 것이 단 한 대도 없다.

바탐방에 남아 있는 앙코르 미니 밴 의 모습. 6~70년대 자체 생산된 차량으로 알려져 있다. @Ty Sarun

60~70년대에는 ‘앙코르’라는 자체 브랜드로 미니버스가 생산되기도 했지만, 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나 문헌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서북부 도시 바탐방 지역에 수 대 정도가 남아 있어 이를 증명할 따름이다.

2013년 캄보디아 최초 자체 생산 브랜드 전기 자동차 출시했으나…

지난 2013년 캄보아 최초의 자체생산 브랜드 차 ‘앙코르'(Angkor)의 모습

그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난 2013년 캄보디아에 다시 자국 브랜드를 단 전기자동차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Heng Development Co.이 생산한 ‘Angkor EV 2013’라는 이름의 2인승 전기자동차는 날개형 도어를 달고 한번 충전으로 300km 주행이 가능하며, 최대 시속 60킬로 속도로 달릴 낼 수 있게끔 설계 제작되었다.

첫 출시 당시 이 회사는 한 대당 가격을 1만불 이내로 정했고, 비교적 저렴하고 공기오염도 없는 환경 친화적인 국민차라는 강점으로 내세웠다.

당시 이 회사를 차린 사람은 캄보디아 여성 재벌이자 옥냐인 ‘세앙 찬 헹’이었다. 그러나 당초 야심찬 계획과 달리 더 이상 이 자동차를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개발과정에서 잦은 기계적 결함이 발생한데다, 이후 제대로 된 투자자마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사업가 세앙 찬 헹은 엎친데 덥친 격으로 각종 토지분쟁과 송사에 휘말렸다. 현재 껀달주에 있는 신공항부지 소유권과 관련해 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정착해 살던 300여 가구와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인권탄압문제로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미국정부로부터는 입국비자까지 취소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로 인해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캄보디아의 첫 자국 자동차 생산 계획은 결국 차질을 빚게 되었고, 이후에도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프놈펜 St.80에 있던 씨트로엥 정비차고의 오래된 간판 로고.

결국 캄보디아는 자국 브랜드 차량 생산이라는 꿈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대신 그 빈 자리는 캄보디아에서 생산되는 외국브랜드 차량들이 메우고 있다. 2011년 중국 합작회사가 자동차 조립 생산 공장을 지은데 이어 지난 2012년에는 현대자동차가 남서부해안 코꽁주 지역에 자동차 조립생산기지를 건설했다. 이후 2017년 MVLC그룹(전 코라오그룹)이 쌍용 자동차 조립 생산 및 자체 브랜드 트럭 생산 전초기지를 베트남 국경 인근 바벳 수출자유지역 113헥타르 부지에 세웠다. 차량공유서비스업체인 한국계 기업 타다측도 현재 깜퐁스푸 지역에 조립생산라인을 짓고 있으며, 금년 하반기에 3륜 전기 자동차를 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연 기자]


잠깐! 시트로엥의 베스트셀러 카 2CV?

픽업트럭 스타일로 생산된 2CV의 모습. 1960년대 촬영 추정.

프랑스 자동차사 시트로엥(Citroen)의 엠블렘은 V자가 거꾸로 2개 겹쳐져 있는 모양으로 더블 셰브런(chevron: 갈매기[6])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당시 시트로엥에서 생산하던 기어의 톱니바퀴가 갈매기 모양이었는데, 여기서 착안해 엠블럼을 만들었다고 한다.

1939년 시트로엥은 짐마차를 대신할 싸고 좋은 차량을 만들면 대박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 수평대향식 2기통의 8마력 375cc 엔진의 2CV를 300대 한정으로 출시했다.

참고로, 2CV는 ‘Deux Chevaux’의 숫자와 알파벳 약어 표기로, ‘되 슈보’라고 읽는다. 이는 프랑스어로 ‘두 마리의 말’이라는 뜻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2마력. 수평대향식 2기통 엔진을 가진 차량의 성격을 그대로 노출한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이 차의 생산이 중단되었고,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시트로엥 경영진은 생산된 차들을 대부분 폐기하거나 숨겨 놓는 애국정신(?)을 발휘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종전된 후 재건의 움직임과 함께 싸고 가벼우면서 민첩한 차를 유럽 각지에서 생각하게 되었고, 폭스바겐과 더불어 시트로엥 역시 1949년에 2CV의 생산을 재개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시하누크빌 항구에서 중국으로 수출되기 위해 선적중인 시트로엥 2CV의 모습. (1958~1959년 추정)

‘못생긴 오리(het lelijke eendje)’로 불릴 정도로 디자인이 별로라는 평이 많았지만 전후 실용성을 중시하는 분위기속에 시트로엥의 부활을 이끌게 된다. 또한 단순함의 극치를 달린 디자인 속에는 독립식 유압서스펜션과 앞 엔진 전륜구동 구성 등 당대로선 혁신적인 기술들이 담뿍 담겨 있었다. 이 경차는 전륜구동 레이아웃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모델로 40년 동안 큰 디자인 변화 없이 판매되었다. 외양상으로는 그릴 및 헤드램프, 뒷창문, 실내 마감을 개선하는 데 그쳤으며, 엔진도 초기 양산형인 379cc 8마력에서 602cc 29마력까지 업그레이드 하는 수준에서 멈췄다. 프랑스에서는 1988년 생산을 중단했으며, 최종적으로는 1990년에 포르투갈에서 단종 시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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